나이스한 개새끼
곧 12월이다. 눈을 뜨면 바로 감고 싶은 12월은 그리 썩 반갑지 않았다. 날이 추워지고 나는 죽고 싶어한다. 모든 것에 지쳐서 힘이 점점 빠지게 된 요즘 뭐가 그리 즐길 만 하냐 모르겠다. 공부해야 하는 학생인데, 맨날 쓸대없는 생각을 하고 해야 할 공부를 안 하고 뭐한 짓이야? 만약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피식 웃을 것이다. 요새 공부의 이유를 묻고 검색해보면 이런 책들이 나오더라.
제목들을 보고 참 기가 막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... 기분이 오락가락하다. 어렸을 때 나는 왜 공부해야 하냐는 소리 한 번도 없었다.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학교는 가야 한다. 질문이 많아지면 엄마가 화가 난다. 엄마의 화난 이유를 모르고 자기 탓만 했던 나에게 학교는 피난처가 돼 버렸다. 학교를 다니면 다 알게야. 그 때문에 따뜻한 거짓말에 속아서 단어와 단어의 사이, 문장과 문장의 속에 파묻혀 허황한 인생을 살게 되고, 드디어 눈멀고 귀막힌 어른이가 됐다. 불행하게 결혼해서 아이 낳고, 그 아이는 말을 할줄 알고 글을 쓰게 되면 나한테 질문도 할 거다. 나도 모르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지 못할 때 자존심 상할까봐 화를 낼까. 무서워. 무서워. 요즘 어른이든 어린이든 공부해야 한다. 공부해도 좋은 것을 반드시 얻을 것도 아니고 궁금증을 해결할 수도 없다.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다. 못한 공부를 해도 공부하고 또 공부를 한다. 공부만 하는 것에 물두하고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았다. 이것이 참 이상한 일이다. 강요받은 공부이든 스스로 기꺼이 원하던 공부이든 간에 공부의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. 나한테 이런 헛수고는 무슨 의미를 지닌지 모르겠다. 이유를 알고 싶었으나 이유를 알아도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된 것 같지도 않았다.
가르치는 사람은 남성의 가면을 씌우고 주체의 목소리로 가장하고 있다. 그는 지식의 생산자이고, 나는 지식의 소비자이다. 오늘날의 공부는 너도나도 할 수 있는 시간과 머니를 요구하는 게임이다. 재밌으면 그만인데 안타깝게도 재미 하나도 없다. 심지어 재밌다고 계속 자기기만을 해야만 일찍 자살시도를 안 하게 면할 수 있다. 오늘날의 공부는 실패한 문화콘텐츠 앞에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친 것이다.
그냥 살다 간 사이인데 무슨 인연이라 그래. 48시간동안 계속 눈 뜨고 있어보니 내가 여태까지 안 죽고 사는 게 신기하다. 왜 안 죽는지 모르겠다. 곧 소리없이 죽을 것 같은데 계속 숨쉬더라. 밥도 2일에 1번정도 먹고… 물은 조금씩 마시고 있다. 잠이 안 온다. 20년이 나한테 너무 길다. 나는 2년 더 살아도 기적이라 그렇게 더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.